영화리뷰 / / 2022. 10. 10. 16:07

영화 <살인의 추억>, 범인은 언제나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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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남기지 않는 연쇄살인범을 잡아야 한다.

1986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무참히 강간하고 살해당한 젊은 여인이 농수로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유사한 강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일대가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로 공포에 휩싸입니다. 이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본부는 구희봉 반장을 필두로 지역 토박이 형사 반두만과 조용구, 서울특별시 시경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이 배치됩니다.  자신의 육감으로 수사하는 두만과 원리원칙으로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수사하는 태윤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신경전을 벌입니다. 어느 날 두만은 아내에게서 죽은 향숙을 쫓아다니던 지적장애인 백강호가 그녀가 죽은 날에도 현장에서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용의자로 체포하게 됩니다. 체포된 백강호를 강압적으로 수사하던 희봉과 두만은 그에게서 자백을 받고 현장 검증에 나섭니다. 그렇게 사건을 끝내려 하던 희봉과 두만은 방송국과 사람들이 몰려든 현장에서 백강호가 범죄 사실을 부인하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에 희봉은 파면이 되고 새로 신동철 반장이 부임하자 수사는 활기를 띱니다. 강간살인사건이 일어난 날 비가 오는 날이었고, 그날 피해자들은 빨간색 의상을 입었다는 공통점을 알아냅니다. 하지만 또다시 일어난 사건에서도 수사진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살해하거나 결박할 때도 모두 피해자가 착용했거나 사용하는 물품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강간살인에서 조차 범인은 피살자에게 자신의 음모조차 단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리무중에 빠지던 중 한 라디오에서 '우울한 편지'라는 노래가 방송되는 날마다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태윤은 엽서를 확보하기 위해 방송국을 향하고, 두만은 현장에서 아무 증거가 없다는 점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근처의 절과 목욕탕을 뒤지며 무모증인 사람을 찾습니다. 태윤은 엽서를 확보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다시 찾아간 현장에서 두만과 만나는데 그곳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이는 조병순을 체포하여 수사하던 중 우연히 강간살인사건의 생존자인 여자를 찾게 됩니다. 그녀는 범인과 마주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눈을 감고 있어 범인의 얼굴을 못 봤지만 자신의 입을 막던 범인의 손이 여자처럼 아주 부드럽고 고왔다는 것만 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서로 돌아온 태윤은 조병순의 손을 보고 그가 범인이 아니라며 단정 지으며 두만과 실랑이하는 순간 라디오에서 '우울한 편자'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순간 그들은 오늘 밤 범행이 일어날 것을 직감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수사 병력을 요청하였지만 시위로 인해 모두 빠져 범인은 경찰 수사망을 피해 또다시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렇게 피해자가 발생한 다음 날 방송국에서 '우울한 편지'를 신청한 엽서를 확보하여 유력 용의자 박현구를 체포하지만 그는 범행을 부인합니다. 그러다 생각나는 백강호의 진술에 이상함을 느낀 태윤과 두만은 그가 목격자임을 깨닫고 달려가지만 그 순간 백강호는 우연한 사고로 열차에 치여 죽게 됩니다. 유일한 목격자 백강호가 사망하자 경찰 과잉 수사라는 논란이 끊이질 않자 증거 불충분으로 유력 용의자 박현구가 풀려납니다. 그 논란 속에도 수사 중이던 그들은 범인의 정액을 발견하지만 당시 분석장비가 없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미국에 의뢰를 하게 됩니다. 미국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유력 용의자인 박현구를 감시하던 중 그의 행방을 잠시 놓치게 된 그날 또다시 사건이 발생합니다. 피해자는 어린 학생이자 분노한 태윤이 박현구를 찾아가 압박하여 자백을 받으려 했지만 미국에서 도착한 검사 결과는 불일치로 그는 용의자 선상에 벗어나고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미제에서 기제로의 전환

당시 1986년에 관할 파출 소장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1차~4차까지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민감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로 사건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을 빨리 태워버리는 등 초동 조치의 기본을 지키지 않아 사건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5차 사건까지는 피해자 주변 인물 중심으로 수사하다 6차 사건이 발생하며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그제야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언론의 관심과 민심이 들끓게 되자 빨리 사건을 해결하라며 경찰을 닦달하지만 그 당시 연쇄 살인이라는 개념이 잡혀 있지 않았고, 수사기법도 발달하지 않아 증거를 수집해도 밝힐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미제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2019년 9월 18일 진범으로 진범을 추적되는 범인이 확인되었습니다. 2019년 7월 15일 새로 개발된 잔사 DNA 증폭 및 복원 기술로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품에서 새로운 DNA를 뽑아내었고 그것을 토대로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 베이스와 대조하던 중 일치하는 수감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는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이상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무기징역수입니다. 지난 2년간 들어온 수십 건의 첩보를 바탕으로 이춘재를 특정하고, 두 달간 진범 여부를 조사해왔습니다. 그리고 국과수에 의뢰한 9차 사건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가 이춘재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되자 추가로 감정을 의뢰하여 5차, 7차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이춘재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습니다. 이제야 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이유는 수형자 DNA 데이터베이스가 2010년이 돼서야 만들어졌고, 그 이전의 사건들은 DNA 대조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춘재는 사건 당시 23세~28세로 사건 당시 화성군에서 살았음에도 수사대상에서 빠진 이유는 혈액형의 차이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6차 사건 이후로 처음 조사를 받게 되지만 혈액형과 발자국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사 선상에서 제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8차와 10차 사건 이후에도 2번이나 추가 조사를 받았지만 끝까지 혐의점을 찾지 못해 풀려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특정된 이춘재는 8차 조사까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다 2019년 10월 1일 처음으로 범행을 인정하고 자백했습니다. 그는 계속 범행을 부인하지만 줄줄이 나오는 증거들로 더 이상 주장해봤자 가석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되어서인지 그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짓이 드러날 줄 알았다"며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1991년 사이 일어난 기존 화성 연쇄살인 사건 9건, 같은 시기 화성에서 저지른 추가 범행 3건, 1993년 4월~ 1994년 1월 이전 사이 청주에서 추가 범행 2건, 처제 살인사건 외 30건의 추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관계는 여부는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입니다. 8차 살인 사건은 1988년 용의자 윤성여씨가 잡혀 유죄로 무기징역형을 받았지만 모범수로 20년으로 감형되어 2009년에 출소하였습니다. 그는 2003년 옥중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자신은 재판 과정에서 고문당하여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며 항소하였지만 기각 당하였습니다. 당시 사건 피해자의 집 근처 이웃인 이춘재도 용의 선상에 올랐으나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일치하지 않아 제외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국과수 조사관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업무가 과중하여 당시 수거된 모든 음모 중 B형만 검사하고 그 외에 음모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춘재의 체모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합니다. 이 일로 당시 담당 형사들을 조사할 예정이었는데 아쉽게도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들 전부 퇴직하여 경찰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모두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수집된 증거를 허술하게 보관하여 밝혀진 혈액형 B형이라는 것에만 집착하여 코앞에 있는 용의자를 놓치고 무고한 사람을 억울한 수감 생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가 20년을 복역하고 난 뒤 이춘재의 자백과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재심을 진행하여 2020년 12월 17일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렇게 34년 만에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사건이 풀리게 됩니다. 

영화와 진실을 본 감상

경찰들의 잘못된 수사 방식과 행동에 화가 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경찰 생활로 한 번 보면 범인이라는 육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육감의 오류로 애먼 사람을 고문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는 과학수사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고, 증거를 따로 보관하는 방식이 없었기 때문에 증거가 오염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춘재가 살인하기 좋았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에 나온 프로파일러가 말했습니다. 요즘 시대에 연쇄 살인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날이 갈수록 과학수사 기술이 발전하기 때문에 범인을 금방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이춘재가 그 당시가 아닌 현 시기에 살인을 저질렀다면 무고한 피해자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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