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 2022. 10. 4. 17:34

영화 <한산: 용의 출현> 후기, 운명을 바꿀 압도적인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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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에 몰린 조선을 구하기 위한 전투기 시작된다. 

195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입니다.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력을 부산포로 집결시킵니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전쟁의 패배와 선조마저 의주로 파천하여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조선을 구하기 위해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앞선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거북선의 출정이 어려워지고, 거북선의 도면마저 왜군의 첩보에 의해 도난당하게 됩니다. 왜군은 연승에 힘입어 그 우세로 한산도 앞바다로 향하고,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운명을 가를 전투를 위해 필사의 전략을 준비합니다. 1952년 여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조선의 운명을 건 해상 최고의 해전이 펼쳐집니다.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학익진을 펼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한산도 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고 불립니다. 1952년 5월 29일부터 제2차로 출동한 이순신의 수군은 6월 10일부까지 사천 성창, 당포, 당항포, 율포해전 등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육지에서는 계속 패전의 소식만이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되자 기세가 등등해진 왜군은 해상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여 가덕도와 거제도 부근에 적선 10여 척에서 30여 척까지 떼를 지어 출몰하면서 육군과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보고를 들은 이순신(전라좌수사)은 이억기(우수사)에게 연락하여 이를 막기 위해 다시 출동하기를 결정하였습니다. 이때 일본은 해상에서의 패전을 만회하기 위하여 병력을 증가하였습니다. 와키사카 야스하루의 제1진은 70여 척을 거느리고 웅천 방면에서 출동하였고, 구키 요시타카의 제2진은 40여 척을, 제3진의 가토 요시아키도 많은 병선을 이끌어 합세하였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7월 6일 이억기와 더불어 49척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출발, 노량에 이르러 경상 우수사 원균의 함선 7척과 합세하였습니다. 7일 저녁 조선 함대가 고성 땅 당포에 이르렀을 때 적함 대. 중. 소 70여 척이 견내량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접하고 이튿날 전략상 유리한 한산도 앞바다로 적을 유인할 작전을 세우게 됩니다. 한산도는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 나갈 길도 없고, 적이 궁지에 몰려 상륙한다 해도 굶어 죽기에 알맞은 장소였습니다. 먼저 판옥선 5~6척으로 적의 선봉으로 쫓아가 급습하자 적선이 일시에 쫓아 나오자 아군 함선은 거짓 후퇴를 하며 적을 유인합니다. 아군이 예정대로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자 미리 약속한 신호에 따라 모든 배가 일시에 북을 올리며 뱃길을 돌리고, 호각을 불면서 학익진(전투에서 사용하는 진법)을 펴고 일제히 왜군을 향해 진격합니다. 거북선의 모든 화력을 한꺼번에 쏘아 적선을 격파하고 불사른 것만 66척이나 된다고 합니다. 적의 목을 잘라 온 것이 86급, 기타 물에 빠지거나 찔려 죽은 수가 수백 명에 이르며, 한산도로 도망친 400여 명은 군량이 없어 13일간 굶주리다 겨우 탈출했습니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영웅의 업적을 보다.

세계사를 통틀어 수많은 명장이 있지만, 모든 전투에서 빛나는 전승을 거두고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단 한 척의 배도 잃지 않은 유일한 해군 제독이 이순신이 유일하다는 얘기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그의 치밀한 지략으로 만들어진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로 적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진법으로 백지 위에 학익진도를 그리며 장수들의 성격에 따른 학익진 배치 위치와 이름을 하나하나 써내려 가는 장면은 정말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배 위에서 적과 활을 쏘며 싸우는 아군들도 대단하지만 함선에서 묵묵히 죽을힘을 다하여 노 젓는 격군들의 모습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왜놈의 포로가 이순신 장군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장군은 자기가 살고자 우리를 사지로 내몰았는데, 당신은 부하를 살리고자 직접 사지로 나섰습니다. 이 전쟁은 어떤 의미입니까?"라고 묻자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은 국가와 국가의 전쟁이 아니라 의와 불의의 전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의가 이겨야 한다고, 불의가 져야 한다고도 답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선택한 의를 향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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